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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외치는 한 남자의 절규와 시대의 상처

by info6587 2025. 6. 28.

영화 박하사탕 한장면
영화 박하사탕 한장면

《박하사탕》(1999)은 한 남자의 삶을 시간의 역순으로 되짚으며, 그 개인의 파멸 속에서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집단적 트라우마를 비추는 걸작이다. 이창동 감독은 주인공 김영호를 통해, 개인의 선택이 아닌 국가적 폭력과 시대의 굴곡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지를 섬세하고 통렬하게 그려낸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외침은 단지 개인의 후회가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사회적 파국을 증명하는 집단의 비명이기도 하다.

나 다시 돌아갈래: 한 인간의 절규가 담긴 시간의 역류

《박하사탕》은 시간을 거슬러 흐른다. 영화는 1999년, 주인공 김영호가 철길 위에서 외치는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절규와 함께 시작되며, 이후 장면들은 거꾸로 재생되듯 그의 삶을 역순으로 되짚는다. 이 독특한 서사 구조는 단순한 연출적 실험을 넘어, 한 개인이 왜 파멸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구조적 장치다. 김영호는 사회의 부조리와 폭력 속에서 점차 무너져 간다. 이창동 감독은 그의 생을 추적하며, 개인의 선택이 아닌 시대의 억압이 인간을 어떻게 짓밟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준다. 1999년 철길 위에 선 그는 완전히 망가진 중년 남성이다. 삶의 의욕은커녕, 주변인들과의 관계도 끊어진 채, 더 이상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 남은 것은 과거에 대한 후회,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죄책감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그는 본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는가? 아니면 누군가, 혹은 어떤 시스템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졌는가? 시간이 거꾸로 흐르며 보여주는 각 장면들은 김영호가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된 과정의 파편들이다. 1994년, 1987년, 1984년, 1980년으로 이어지는 그의 과거는 단지 개인의 역사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근현대사를 압축한 파노라마다. 노동운동, 군부정권, 광주민주화운동, 경찰의 폭력, 신군부 시절의 고문,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속에서 무너져간 '개인'의 서사가 복합적으로 녹아 있다. 서론에서는 이 영화의 시간 구조와 주인공 김영호의 내면 붕괴 과정을 짚으며, 그가 개인으로서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거운 시대적 짐을 짊어졌음을 조명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는 단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그것은 죄책감, 상실, 자책, 그리고 사라진 순수에 대한 절규이며, 결국 모든 것을 잃고도 여전히 되돌아갈 수 없는 한 시대의 상처다.

철로 위에 쌓인 한국 현대사, 김영호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박하사탕》은 단지 한 남자의 비극적 인생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대한 증언이다. 김영호라는 인물은 특정한 캐릭터라기보다, 어느 시대든 존재했을 법한 ‘대표적 인간’의 표상이 된다. 본론에서는 이 영화가 그려내는 한국 현대사의 이면과, 김영호라는 개인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파괴되었는지를 분석한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다. 당시 김영호는 신참 군인으로 광주에 투입되며, 무력 진압과 총격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가해자가 된다. 그의 삶에서 이 시점은 결코 회복될 수 없는 윤리적 단절을 낳는다. 이 장면에서 이창동 감독은 직접적인 폭력보다, 폭력을 묵인하고 침묵하는 분위기, 그리고 후일 이를 외면하는 사회의 무관심을 더욱 강조한다. 광주 이후 김영호는 경찰로 입직하지만, 그 안에서도 폭력은 계속된다. 고문 기술자로 불리는 그의 업무는 국가 폭력을 개인에게 내면화시키는 상징이다. 그는 점점 감정을 잃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폭력적이 되며, 사랑하는 연인 ‘순임’조차 멀어지게 만든다. 순임은 영화 내내 ‘잃어버린 순수’의 상징이다. 그녀에게 주었던 박하사탕은 과거의 향수이며, 동시에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은유다. 1984년 노동운동가 체포 과정에서 보인 잔인함은 김영호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음을 드러낸다. 영화는 그가 스스로의 도덕적 기준을 조금씩 포기하면서, 그만의 방식으로 ‘살기 위한’ 선택을 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김영호는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을 희생한 이 시대의 희생자이자 가해자라는 복합적 위치에 놓인다. 이 영화에서 인물 간 대화는 많지 않다. 대신 긴 침묵과 정적인 화면이 많고,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든다. 이러한 서사 방식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시대의 죄’와도 맞닿아 있다. 즉, 이 영화는 단지 ‘어떤 남자’의 잘못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남자를 만들어낸 시대와 사회의 구조를 조명하며 관객에게 공동의 책임을 묻는다. 본론은 이렇게 김영호의 삶을 해부하며, 그 안에 내포된 한국 사회의 구조적 억압, 폭력, 침묵, 그리고 그에 대한 개인의 붕괴 과정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박하사탕》은 단지 감성적인 회고가 아니라, 냉정하고 비판적인 성찰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순수로의 회귀는 가능한가: 박하사탕이 남긴 질문

영화의 마지막, 혹은 시간상으로는 ‘처음’ 장면은 1979년. 김영호와 순임이 철길 옆 들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다. 그는 수줍게 기타를 치고, 그녀는 박하사탕을 건넨다. 이 장면은 매우 조용하고 평화롭다. 전쟁도, 고문도, 권력도 존재하지 않는 그 순간은 김영호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관객은 알고 있다. 이 모든 평온은 머지않아 산산이 부서질 것임을. 이 지점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외침은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정말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순수했던 시절은 이미 구조적 폭력과 사회적 억압 속에 파괴되었고, 그 안에서 김영호는 더 이상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창동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회복 불가능한 순수’의 개념을 암시하며, 영화 내내 반복되었던 죄와 속죄, 파멸과 회한의 주제를 완결 짓는다. 이 영화는 결코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또한 김영호를 ‘불쌍한 피해자’로 묘사하지도 않는다. 그는 분명히 폭력을 행했으며, 다른 이들의 삶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시대의 구조 속에서 그런 인간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희생자이기도 하다. 이중적인 위치는 그를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박하사탕》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히 규정될 수 없다는 것. 역사와 사회는 개인을 망가뜨릴 수 있으며, 우리는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공범’ 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박하사탕》은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절실한 욕망과,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 냉혹한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비가다. 박하사탕의 달콤함은 그 시절의 향수지만, 동시에 그 향을 다시 맡을 수 없다는 현실을 상기시키는 역설적 장치다. 김영호는 끝내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이라도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가 외친 그 말은, 어쩌면 이 사회 전체가 해야 할 외침이었는지도 모른다. “나 다시 돌아갈래!” 지금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부터 바로잡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