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잠! 신들의 분노(Shazam! Fury of the Gods)'는 단순한 슈퍼히어로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10대 청소년들이 신의 힘을 얻게 되면서 겪게 되는 정체성 혼란, 가족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점차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환상적이고 감동적인 액션 드라마로 풀어낸다. 기존의 히어로 영화들과는 다르게 ‘가족’이라는 테마를 중심축에 두고 있으며, 성장통을 겪는 소년과 신들의 분노가 충돌하는 서사는 코믹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이 글은 영화를 직접 관람한 관객으로서 느낀 진심 어린 감상과 내면의 여운을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풀어낸 기록이다.
평범한 소년의 외투 속, 신들의 전쟁이 시작되다
처음 극장에 들어설 때, 나는 약간의 기대와 동시에 걱정을 품고 있었다. 2019년 ‘샤잠!’이 보여준 신선함과 유쾌함이 과연 이번 속편에서도 유지될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전작이 그랬듯, 이번에도 유쾌함만으로 끝나지 않고 진심어린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나는 그 질문에 스스로 이렇게 답하고 있었다. “이 영화는 그 이상을 해냈다.” ‘샤잠! 신들의 분노’는 단순한 속편이 아니다. 성장과 책임, 상실과 용서, 그리고 가족이라는 무게를 제대로 마주하는 두 번째 챕터다. 영화는 신들의 세계에서 시작된다. 아틀라스의 딸들—헤스페라(헬렌 미렌), 칼립소(루시 리우), 안티아(레이철 지글러)—가 인간 세계에 나타나, 샤잠의 힘을 빼앗기 위해 움직인다. 전작보다 훨씬 더 어둡고 깊어진 세계관은 이 영화가 ‘단순히 웃기고 즐거운 히어로 무비’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명백한 선언이다. 주인공 빌리 배트슨은 이제 10대 후반. 여전히 입양가정에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샤잠으로 변신하면 여전히 어른의 몸을 지닌 초인이 되지만, 내면은 아직 미완성된 아이 그대로다. 그 지점에서 나는 묘한 이입을 느꼈다. 신의 힘을 가졌지만, 감정의 무게나 책임감은 아직 제대로 감당할 줄 모르는 그 모습은, 우리가 성장하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심리적 혼란과 매우 닮아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빌리가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과연 이 집단에 필요한 존재인지 회의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없어도 되는 존재 아닐까?”라는 그의 속마음은 영화 내내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며, 결국 관객의 마음을 두드린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과거 나 자신이 누군가의 기대에 어긋났을까 걱정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이 영화는 감정적으로도 나를 흔들어놓는다. 또한 샤잠과 그 친구들이 전투에서 보여주는 액션은 단순한 볼거리로 끝나지 않는다. 전투 장면 속에는 형제자매들 사이의 유대감, 희생, 그리고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가 섬세하게 녹아들어 있다. 특히 전투 중 한 인물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다른 형제를 구해내는 장면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감정의 진폭이 컸다. 샤잠이라는 캐릭터는 사실 다른 DC 히어로들과 달리 굉장히 '인간적'이다. 빌리는 늘 웃고 농담을 던지지만, 그 안에는 ‘진짜 어른이 되기 두려운 아이’가 있다. 나는 이 영화가 그 점을 참 잘 표현했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히 액션이나 특수효과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질문들—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책임은 어디서 오는가?—그 질문들이 내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단순히 영화가 끝나면서 사라지지 않았다.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은 무겁고도 따뜻했다. 그것은 내가 단순한 히어로물이 아닌, 성장과 사랑의 서사를 경험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신화와 가족의 드라마
‘샤잠! 신들의 분노’의 가장 큰 장점은 균형감이다. 코미디와 진지함, 신화와 일상, 어른과 아이, 모두를 절묘하게 조율해 관객의 감정을 자유롭게 오르내리게 만든다. 나는 이 영화가 유쾌하다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 영화는 ‘서사적 유쾌함’과 ‘감정적 깊이’를 동시에 갖춘, 매우 드문 슈퍼히어로 영화였다. 전작에서 샤잠 패밀리는 단지 ‘힘을 공유한 아이들’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각자의 개성이 뚜렷해지고 갈등과 성장이 중심으로 떠오른다. 빌리는 리더로서의 책임감에 짓눌리고, 프레디는 자신의 독립성을 원하며, 다라, 유진, 페드로 등도 각자의 고민과 감정을 안고 있다. 이런 부분이 무척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초능력이 있어도, 감정의 혼란과 관계의 균열은 피해 갈 수 없다는 메시지가 인상 깊었다. 신화적 요소 또한 매우 풍부하게 구현되었다. 아틀라스의 딸들은 단지 적대적인 ‘악당’이 아니라, 자신들의 상실과 분노를 정당화할 수 있는 서사를 지닌 존재들이다. 특히 막내 안티 아는 인간과의 연대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키포인트다. 나는 그녀의 선택과 내적 갈등에서 ‘악’과 ‘선’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얼마나 얄팍한지를 새삼 느꼈다. 그 복합적인 감정이 이 영화의 품격을 높였다. 액션 역시 전작보다 훨씬 화려하고 다이내믹하다. 특히 필라델피아 도시 전체가 전장으로 변하는 장면은 스케일 면에서나 감정 면에서나 최고조에 이른다. 하지만 그런 스펙터클 속에서도 중심은 늘 ‘가족’이다. 싸움보다, 싸움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손을 잡는 장면이 더 강하게 각인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것은 ‘빌리’라는 인물의 성장이다. 그는 더 이상 단순한 농담꾼이 아니다. 영화 후반, 그는 스스로를 희생할 수도 있다는 결단을 내리며 진짜 ‘영웅’으로 나아간다. 나는 그 장면에서 이 영화가 단순한 슈퍼히어로물이 아닌 성장 서사로 자리 잡았다는 확신을 얻었다. 결국 ‘샤잠! 신들의 분노’는 외면적으로는 신과 인간의 싸움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 싸움은 나에게도 익숙했고, 그래서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힘의 의미와 가족의 울림, 샤잠이 남긴 진짜 메시지
영화가 끝나고 극장 조명이 다시 켜졌을 때, 나는 묘하게 울컥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마치 나도 하나의 샤잠 패밀리의 일원이 되어 그들과 함께 전투를 치르고, 상실을 겪고, 함께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샤잠! 신들의 분노’는 그렇게 한 편의 오락영화를 넘어선 ‘경험’으로 남았다. 내가 영화를 통해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바로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 영화는 단지 피를 나눈 관계만을 가족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함께 울고, 함께 웃고, 서로를 지지하고 희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가족이 된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나는 그 점에서 깊은 울림을 받았다. 입양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판타지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이 영화의 섬세함은 놀라웠다. 실제로 입양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큰 위로와 공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샤잠이라는 히어로는 독특한 상징성을 지닌다. 그는 아이이면서 동시에 어른이고, 진지하면서 유쾌하며, 막강한 힘을 가졌으면서도 불안정하다. 나는 바로 이 이중성이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내면의 이중성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강한 척하지만 속은 약하고, 웃고 있지만 마음은 울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말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전투 장면, 빌리가 신들의 무기를 이용해 스스로를 희생하려는 선택을 했을 때, 나는 스크린 속 액션보다 그의 감정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는 결국 살아남지만, 그 선택의 순간이 남긴 울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의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한 소년이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순간의 통과의례처럼 느껴졌다. ‘샤잠! 신들의 분노’는 단순한 속편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성장의 기록이었고, 상실과 회복의 드라마였으며, 동시에 진짜 영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성찰의 무대였다. 나는 이 영화가 단지 ‘보는 재미’를 넘어, ‘느끼는 감정’과 ‘생각하는 질문’을 동시에 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장르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이건 단지 웃고 떠드는 슈퍼히어로 영화가 아니다. 이건 우리의 내면과 닮아 있는 성장 이야기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관계의 드라마이다. 그러니 마음을 열고 이 영화 속 가족들과 함께 웃고 울어보시길 바란다. 그때 진짜 샤잠의 힘이 무엇인지, 비로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