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Spirited Away, 2001)’은 어린 소녀 치히로가 신들의 세계에 발을 들이며 겪는 모험과 성장을 통해 자아의 회복, 인간성과 기억, 자본주의의 탐욕 등을 상징적으로 풀어낸 애니메이션 영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독창적인 세계관과 동양적 미학을 바탕으로,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관객에게 내면 성찰과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름을 빼앗긴 존재가 진짜 자신을 되찾는 여정은, 시대와 나이를 초월한 깊은 울림을 준다.
이름을 잃고 세계를 건너다, 신들의 욕망과 소녀의 첫 발걸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다. 이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 점점 흐릿해지는 정체성과 인간성을 되묻는 철학적 여정이며, 동시에 소녀가 성숙해지는 성장 서사이다. 주인공 치히로는 이사 도중 우연히 부모와 함께 폐허가 된 터널을 지나 신들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이곳은 인간의 시간과 규칙이 통하지 않는 곳이며, 물질적 욕망과 존재의 본질이 역전된 공간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상징적인 장면으로 가득하다. 치히로의 부모가 음식에 탐닉하다 돼지로 변하는 장면은 자본주의 사회의 과소비와 탐욕을 은유한다. 인간은 이 세계에서 통제되지 않은 욕망에 의해 쉽게 타락하며, 그 대가는 ‘자아의 소멸’이다. 반면 치히로는 본능적으로 이 세계의 질서에 경계심을 품고, 욕망에 물들지 않음으로써 유일하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는 인물로 설정된다. 욕망과 이름은 이 영화의 핵심 개념이다. 치히로는 유바바와 계약하면서 ‘치히로’라는 자신의 이름을 빼앗기고 ‘센’으로 불린다. 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곧 존재의 본질을 잃는다는 의미이며, 유바바가 이를 통해 사람들을 지배한다는 설정은 이름이 곧 ‘정체성’ 임을 보여준다. 센으로 불리는 동안 치히로는 점차 변하지만, 하쿠의 도움과 기억, 그리고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되찾으려는 의지 속에서 점차 자아를 회복해 간다. 또한 이 영화는 동양의 신화, 토착 신앙, 자연주의적 세계관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독특한 배경을 활용한다. 가마신(더러운 강의 신) 에피소드는 환경오염 문제를 상징하고, 가오나시라는 캐릭터는 인간의 외로움, 모방, 정체성 부재를 은유한다. 이처럼 영화는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 안에 복합적인 사회적,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특유의 ‘환상적 리얼리즘’을 통해 이를 구현한다. 서론은 이렇게 치히로가 맞이하는 세계가 단순한 모험의 무대가 아니라, 인간성과 사회를 반추하는 복합적 구조임을 전제한다. 관객은 치히로를 따라가며, 스스로의 내면과 사회 속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된다. ‘센’이 ‘치히로’로 돌아가는 과정은 단순한 귀환이 아니라, 존재를 회복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책임을 자각하는 자아 각성의 길이다.
자본의 욕망, 이름의 거래, 그리고 정체성의 회복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표면적으로는 치히로의 모험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 이면에는 자본주의적 질서와 인간성의 균열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사회적 알레고리가 담겨 있다. 치히로가 일하게 되는 목욕탕은 단순한 노동 공간이 아니라, 신들의 욕망이 해소되고 이름이 거래되는 장소다. 유바바는 이 공간의 통치자이며, 노동을 통한 계약과 이름의 소유를 통해 타인을 지배한다. 이는 현대 자본 시스템에서의 고용 구조, 정체성 상실, 인간성 왜곡을 상징한다. 치히로가 처음 목욕탕에 들어설 때 느끼는 두려움과 혼란은, 우리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과도 유사하다. 처음엔 규칙을 알지 못하고, 언어도 낯설며,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질서에 적응하며 자신의 역할을 찾는다. 치히로는 점차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점점 존재를 회복해간다. 목욕탕을 찾는 존재들은 하나같이 ‘더럽혀졌거나’ ‘과도한 탐욕’을 지닌 존재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가마신’이다. 강의 신은 처음에는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 덩어리로 등장하지만, 치히로의 도움으로 본래의 정체성을 되찾는다. 이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은유하며, 현대인이 잃어버린 ‘정화의 의식’을 치히로를 통해 회복한다는 메시지를 내포한다. 가오나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본주의적 병폐를 드러낸다. 그는 처음에는 조용하고 순응적인 존재였지만, 외로움과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금을 무한정 내뿜고 다른 존재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그의 변화는 소비사회의 ‘무한 소비 욕망’을 상징하며, 결국 치히로만이 그를 진정시킬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그의 ‘욕망’을 소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히로는 가오나시에게서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않으며, 그에게 인간적 관계를 제공함으로써 존재를 안정시킨다. 하쿠의 존재도 정체성과 기억의 회복이라는 영화의 중심 주제를 강화한다. 그는 유바바에게 이름을 빼앗기고 스스로가 누구인지 잊고 있지만, 치히로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본래 이름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를 기억한다. 하쿠는 강의 정령이자 자연의 상징으로, 치히로의 기억이 그의 존재를 회복시킨다. 이것은 자연과 인간, 기억과 정체성이 서로를 통해 회복된다는 상징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본론은 이처럼 ‘센’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치히로가 노동, 관계, 선택을 통해 정체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서술하며, 이 영화가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선 깊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야자키 감독은 캐릭터들의 행동과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 인간의 욕망, 그리고 상실된 인간성을 정교하게 드러낸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치히로라는 인물이 ‘진짜 자신’을 되찾기 위한 여정이다.
진짜 이름을 되찾는 순간, 성장과 회복의 서사로서의 귀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결말은 단지 모험의 종결이 아니라, 정체성의 회복과 자아의 성숙을 상징한다. 치히로는 유바바와의 마지막 계약을 통과하며 부모를 구하고, 원래 세계로 돌아갈 자격을 얻는다. 이 과정은 단순한 탈출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을 완수하는 통과의례(rite of passage)에 가깝다. 그녀는 더 이상 어른들의 보호 아래 수동적으로 존재하는 아이가 아니며, 자기결정성과 판단력을 갖춘 인물로 변화했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치히로가 하쿠의 이름을 기억해 주는 순간이다. 이름은 이 영화 내내 권력의 상징이었고, 정체성을 규정하는 열쇠였다. 치히로는 기억을 통해 하쿠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하쿠는 감사와 애정을 담아 그녀를 다시 현실로 이끈다. 두 존재는 각자의 세계로 돌아가지만, 서로를 통해 성장하고 변화한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영화의 귀환은 전통적인 ‘원형 서사’의 완성을 따른다. 낯선 세계에 들어가 정체성을 잃고, 시련을 겪고, 그 세계를 이해한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구조는 고대 신화부터 이어진 인간 서사의 보편적인 패턴이다. 그러나 ‘센과 치히로’는 이 서사에 자본주의, 환경, 인간관계라는 현대적 요소를 접목함으로써 보다 깊은 현실성과 철학적 울림을 선사한다. 현실로 돌아온 치히로는 터널을 빠져나오지만, 더 이상 처음의 그 아이가 아니다. 영화 초반, 이사라는 현실적 스트레스에 무기력하고 짜증을 내던 소녀는 이제 자기 의지로 움직이고, 타인을 배려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인물로 성장했다. 이 귀환은 곧 진정한 자아의 복귀이며, ‘이름을 되찾는 것’은 바로 자신을 되찾는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렇게 말한다. 진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낯선 세계를 건너야 하며, 이름을 잃은 자만이 진짜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고. 그 여정은 무섭고 혼란스럽지만, 끝내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만난 모든 존재는, 우리가 다시는 잊지 말아야 할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