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세이야: 더 비기닝(Knights of the Zodiac)》은 전설적인 일본 애니메이션 '세인트 세이야'의 실사화를 시도한 작품입니다. 오랜 세월 팬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던 신화적 세계관과 성투사들의 운명을 새롭게 재해석한 이 영화는, 원작의 정서를 현대적인 시각과 액션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성공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작품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 ‘시작’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글은 원작 팬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관객으로서 느낀 영화의 감정적 진폭을 담았습니다.
추억은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실사판 세인트 세이야가 불러온 감정
‘세인트 세이야’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아주 어릴 적이었다. TV 앞에 앉아 반짝이는 성의(聖衣)를 두른 전사들이 별자리를 배경으로 싸우던 그 장면들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들은 단순한 전사가 아니었다. 정의, 희생, 운명 같은 단어를 어린 나에게 처음으로 가르쳐 준 존재들이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실사판 《세인트 세이야: 더 비기닝》을 마주한 감정은 두 가지였다. 반가움과 두려움. 반가움은 그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 때문이었고, 두려움은 그 기억이 망쳐질까 봐였다. 영화의 첫 장면, 폐허 속을 달리는 세이야의 모습이 등장한다. 카메라는 그를 따라 숨 가쁘게 움직이고, 그의 숨소리 하나하나가 극장 안을 채운다. 마치 그 순간, 나 역시 그와 함께 전설의 서막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영화는 초반부터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세이야가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깨닫게 되었는지, 그리고 사오리(아테나)의 존재와 연관되어 있는지 빠르게 보여준다. 어릴 적 기억에 비하면 디테일이 생략된 부분도 있었지만, 영화는 그 대신 ‘세이야라는 인물의 감정’에 집중한다. 그는 단순한 소년이 아니다. 가족을 잃고,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했던 아이. 그런 세이야에게 어느 날 갑자기 ‘운명’이라는 단어가 들이닥친다. “너는 페가수스의 성투사다.” 그 말은 축복이자 짐이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 ‘운명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해 다룬다. 원작이 초월적인 전투와 서사를 중심으로 했다면, 실사판은 감정과 정체성의 혼란에 초점을 맞춘다. 이 선택은 일부 팬들에게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나는 이 점에서 오히려 더 진심을 느꼈다. 세이야를 연기한 매켄유는 기존의 소년 영웅 이미지에서 벗어나, 거칠지만 선한 마음을 가진 한 사람을 보여준다. 그의 눈빛 속에는 늘 혼란과 질문이 있고, 그것이 그를 더욱 현실적으로 만든다. 그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이 신의 힘을 받아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세인트 세이야의 진짜 이야기다. 《더 비기닝》은 바로 그 본질을 잡아냈다. 원작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뼈대는 분명히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어릴 적 내 안에 자리 잡았던 ‘정의에 대한 감정’을 다시 꺼내 보았다. 지금은 너무 많은 이해타산과 냉소 속에서 감정이 무뎌졌지만, 세이야는 여전히 몸을 던져 싸운다. 그것이 옳은 일이라 믿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소중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더 비기닝》은 ‘시작’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감정의 무게를 가졌다.
페가수스의 날개를 다시 펼치다, 세이야라는 이름의 무게
세이야는 그저 운명에 선택받은 영웅이 아니다. 그는 선택을 ‘받은’ 존재이지만, 그 길을 걸을지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영화는 그 선택의 과정을 섬세하게 다룬다. 그는 처음부터 성투사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도 안 되는 전설과 자신을 분리시키려 애쓴다. 그러나 현실은 그를 끊임없이 시험한다. 사오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조차 설명할 수 없는 힘의 원인을 찾기 위해, 그는 점점 그 전설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중요한 건 그 여정이 단순한 ‘성장물’이 아니라, ‘감정의 수용’이라는 점이다. 그는 분노하고, 회의하고, 두려워한다. 그것은 단순한 영웅서사에선 보기 힘든 감정들이다. 그러나 그 감정이 있었기에, 그의 결단은 더 빛났다. 그는 자신의 분노를 힘으로 바꾸고, 자신의 두려움을 용기로 승화시킨다. 이 여정은 곧,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겪는 내면의 싸움과 닮아 있다. 페가수스의 성의(聖衣)를 입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화려한 CG보다도, 세이야의 감정이 그 장면을 특별하게 만든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그 갑옷은 그의 상처와 용기, 혼란과 사랑이 깃든 갑옷이다. 단순한 무장이 아니라, 마음의 갑옷인 셈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세인트 세이야가 말하고자 했던 진짜 힘이다. 사오리와의 관계 역시 흥미롭다. 둘 사이에는 로맨스 이상의 감정이 있다. 세이야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싸우지만, 동시에 그녀를 통해 자신의 길을 본다. 사오리는 신이지만,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존재다. 그녀는 두려움을 느끼고, 죄책감을 가지며, 세이야를 통해 희망을 본다. 이 감정의 연결이 영화 전반에 감도는 묘한 따뜻함의 이유다.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단순한 싸움 이상의 서사로 확장된다. 영화의 액션은 다소 제한적이다. 원작 팬들이 기대하던 ‘성투사 간의 전설적 격투’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점이 오히려 이 영화의 진정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더 비기닝》은 말 그대로 ‘시작’이다. 이 영화는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고, 신화의 뼈대를 천천히 그려낸다. 그래서 후속 편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세이야는 싸움을 선택한다. 그것은 누군가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대한 책임이다. 이 감정의 진정성이 있었기에, 나는 스크린 속 그의 모습에서 어릴 적 내 마음속에 살던 ‘영웅’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신화는 다시 깨어난다, 《세인트 세이야: 더 비기닝》이 남긴 여운
《세인트 세이야: 더 비기닝》은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예산의 제약 속에 제작된 티가 나고, 액션의 규모나 장면 전환은 다소 거칠다. 하지만 그것을 넘는 감정의 울림이 있었다. 이 영화는 ‘시작’을 이야기한다. 상처받은 청년이 자기 안의 운명을 마주하고, 선택하며, 나아가는 이야기. 그것은 결국 우리가 사는 삶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세이야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가 믿고 싶었던 감정의 상징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처음 성투사들의 이름을 외우던 시절이 떠올랐다. 안드로메다, 드래곤, 시그너스, 피닉스… 그 이름들은 지금도 나에게 특별하다. 《더 비기닝》은 그런 기억을 소환하면서도, 새로운 감정의 터를 마련해 줬다.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영웅을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이 영화는, 작지만 따뜻한 불빛처럼 다가온다. 후속작이 나오기를, 그리고 그 안에서 더 많은 별자리와 전설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 영화 한 편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위로받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진심은, 규모와 관계없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세인트 세이야: 더 비기닝》은 그 진심을 가진 영화였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운명을 향해 싸우고 있다. 그 싸움이 끝나지 않기에, 페가수스의 날개는 여전히 바람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