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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죽음 너머 기억과 음악으로 이어진 가족의 의미

by info6587 2025. 6. 20.

축구 선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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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Coco, 2017)’는 멕시코 전통문화인 ‘죽은 자의 날(Día de Muertos)’을 바탕으로, 가족과 기억, 음악 그리고 정체성의 본질을 탐색하는 감성 애니메이션이다. 어린 소년 미겔이 음악을 금기시하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연히 죽은 자들의 세계로 들어가, 조상들과의 만남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 여정은, 시각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깊은 철학과 감정을 담고 있다. 픽사는 이번 작품을 통해 문화적 다양성과 인간 보편의 감정을 유려하게 결합해 냈다.

죽은 자의 날, 음악과 기억으로 잇는 삶의 또 다른 얼굴

2017년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는 그저 가족용 뮤지컬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이 작품은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도 그것을 어둡거나 공포스럽게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하나의 또 다른 삶으로, 그리고 기억이라는 고리로 여전히 살아있는 이들과 연결된 영역으로 풀어낸다. 영화의 배경은 멕시코의 전통 문화인 ‘디아 데 무에르토스(Día de Muertos)’, 즉 ‘죽은 자의 날’로, 이 날은 죽은 이들이 하루 동안 가족을 만나기 위해 되돌아오는 날이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주인공 미겔은 음악을 사랑하는 열두 살 소년이다. 그러나 그의 가문은 대대로 음악을 금기시해 왔다. 증조부가 음악을 위해 가족을 떠났다는 기억 때문에, 가문은 음악을 ‘가정을 파괴하는 것’으로 여기며 이를 철저히 배격한다. 그러나 미겔은 전설적인 뮤지션 에르네스토 데 라 크루즈를 우상화하며 몰래 기타를 연습한다. 그는 자신의 꿈과 가족의 금기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우연히 죽은 자들의 세계로 넘어가 조상들을 직접 만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인간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기억되어야 하는가?” “가족이란 무엇으로 연결되는가?” 미겔은 죽은 조상들과의 만남을 통해, 과거의 오해와 진실을 마주하며, 단절된 기억이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를 깨닫게 된다. 동시에 죽은 자 역시 기억을 통해 존재를 유지한다는 설정은, 기억이 곧 생명이며 정체성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서론은 이처럼 ‘코코’가 단순한 가족 이야기 이상의 층위를 지닌 작품임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문화적 색채가 뚜렷하면서도 감정의 보편성을 잃지 않는 ‘코코’는 죽음을 매개로 가족, 기억, 음악이라는 인간 본연의 주제를 어린 주인공의 성장 서사에 실어 전달한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아이들을 위한 밝은 판타지인 동시에, 어른들에게는 삶과 관계의 본질을 다시금 묻는 철학적 작품으로 자리매김한다.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존재들, 정체성과 가족의 재발견

‘코코’의 가장 핵심적인 서사 구조는 기억과 존재의 관계이다. 죽은 자들의 세계는 단순한 상상의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기억을 통해 지속되는 세계로 설정되어 있다. 조상이 잊히면, 그들은 그 세계에서도 ‘영원한 죽음’으로 사라진다. 이 설정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규정짓는 요소가 타인의 기억에 있음을 시사하며, 이는 개인 정체성이 결코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겔은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실수로 가족과 떨어져 낯선 이인물 헥터를 만나게 된다. 그는 우스꽝스럽고 천진난만한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점차 이야기가 진행되며 중요한 존재로 부각된다. 헥터는 생전에 음악을 사랑했지만, 가족을 우선시했던 인물로, 사실상 미겔의 증조부라는 반전이 드러난다. 그는 에르네스토 데 라 크루즈에 의해 살해되고, 음악에 관한 모든 명예를 도둑맞은 인물이다. 이 충격적인 진실은 단순한 줄거리의 반전을 넘어, 기억과 오해, 그리고 명예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헥터는 생전에 가족을 그리워했고, 죽은 후에도 기억 속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딸 코코(미겔의 증조모)에게 기억되길 바란다. 이 절절한 소망은 단순한 가족애를 넘어서, 인간 존재가 타인의 기억 속에 어떻게 남고 싶은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미겔은 죽은 자들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음악이 단지 ‘자유’의 상징이 아니라, 기억과 진실을 연결하는 도구임을 깨닫는다. 그는 헥터의 딸 코코에게 아버지가 남긴 노래 ‘Remember Me’를 불러주며, 그를 기억 속에 되살리는 데 성공한다. 이 장면은 영화의 감정적 정점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의 끈이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순간이다. 이처럼 본론에서는 각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축적된 기억이 어떻게 정체성을 구성하고, 가족을 다시 이어주는지를 탐색한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는 단순한 생물학적 구분이 아니라, 기억을 매개로 한 정서적 연속성 위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고리를 복원하는 것은 결국 ‘음악’이라는, 말보다 더 강력한 감정의 언어이다.

기억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죽음 이후도 이어지는 연결

‘코코’의 결말은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뛰어넘어, 관계와 기억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감정적 정화의 순간이다. 미겔은 결국 음악과 가족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음악을 통해 가족을 이해하고, 가족을 통해 음악의 진정한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그는 음악이 자신만의 꿈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가족과의 연결을 유지하는 수단임을 깨닫는다. 할머니 코코는 마지막 힘을 다해 아버지 헥터를 기억하며 그의 존재를 이승에 다시금 연결시킨다. 그녀가 아버지의 노래를 떠올리는 장면은 단지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연출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것이 한 인간의 존재를 어떻게 지속시킬 수 있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헥터는 ‘영원한 죽음’에서 벗어나 다시금 가족의 일원으로, 그리고 음악 속 기억으로 살아남는다. 영화는 죽음을 슬픔이나 상실이 아닌, 연결의 연속으로 그린다. 살아 있는 이들이 기억하는 한, 죽은 자는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단지 멕시코 전통문화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사유 구조에 기반한 메시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도 우리는 그를 기억하며, 때로는 노래를 부르며, 사진을 바라보며, 그 사람의 존재를 다시 살아내는 것이다. ‘코코’는 이렇듯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어른들이 잊고 지낸 본질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남기고자 하는 것, 기억되고 싶은 이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어주는 감정의 언어가 바로 ‘음악’이라는 점을 영화는 명확히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겔이 가족들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은 단지 꿈을 이룬 소년의 모습이 아니라, 단절된 역사를 복원하고, 세대를 연결하는 감정의 회복 그 자체이다. ‘코코’는 죽음을 노래하지만, 사실은 삶을 찬미하는 영화다. 그것도 가장 깊고 순수한 형태로. 결국 기억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며,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한 그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