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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의 하수인이 아닌 나, 렌필드가 된다는 것의 의미

by info6587 2025. 7. 15.

영화 렌필드 포스터
영화 렌필드 포스터

‘렌필드(Renfield, 2023)’는 전통적인 드라큘라 이야기의 하수인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독특한 시선의 영화입니다. 흔히 지나치기 쉬운 조연이자 그림자에 불과했던 렌필드를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이 영화는 인간 내면의 종속과 해방, 그리고 자아 정체성의 갈등이라는 주제를 신선하고도 감각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단순한 호러나 액션 장르에 머물지 않고, ‘독립’과 ‘관계’에 대한 은유를 다층적으로 풀어낸 이 영화는 예상보다 깊은 감정을 관객에게 선사합니다. 본 글에서는 렌필드를 단순한 코믹 호러로 보기보다는, 한 인간의 해방 여정을 담은 심리적 성장 드라마로서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그림자 속에서 주인공으로 – 렌필드의 서사가 새롭게 다가온 이유

나는 늘 드라큘라 이야기를 좋아했다. 어릴 적에는 그저 괴기스럽고 강력한 존재로서 드라큘라의 존재에 매료되었고, 청소년기에는 그 이면에 담긴 고독과 슬픔에 감정이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속에서 늘 조연 혹은 웃음거리로 소비되던 인물이 있다. 바로 렌필드다. 그는 드라큘라의 하수인이자, 명령을 수행하는 기괴한 존재로 묘사된다. 주체성을 잃은 인물. 나는 그를 ‘불쌍한 조연’ 정도로만 기억했었다. 그런데 2023년 개봉한 영화 ‘렌필드’를 보며 완전히 다른 감정을 느꼈다. 그가 더 이상 그림자 속 존재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가진 주인공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뱀파이어 영화처럼 시작되지 않는다. 렌필드의 내레이션으로부터 시작되는 서사는 곧 우리가 알고 있던 고전적인 드라큘라 판타지를 깨트린다. 우리는 처음부터 ‘해방’을 꿈꾸는 하수인을 만난다. 이는 매우 상징적이다. 오랜 시간 누구의 명령에 복종하고,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억눌러야 했던 한 존재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삶을 살아야 하는가? 렌필드는 단순히 드라큘라에게 종속된 인간이 아니다. 그는 자기혐오와 후회, 두려움, 그리고 희미한 희망을 동시에 품고 살아가는 한 인간이다. 그는 드라큘라의 폭력성을 잘 알면서도,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은 비단 영화 속 관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실 속 수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지배 아래에서 자기 목소리를 잃고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스스로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렌필드는 관객에게 거울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익숙함과의 이별을 결심하는 순간. 그것은 곧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선언과 같다. 영화는 때론 유쾌하고, 때론 지나치게 과장되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현대 사회 속 독립, 탈권위, 자기 결정권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릴 때, 렌필드의 이야기는 결코 낯설지 않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생각했다. ‘우리 모두 어딘가의 렌필드였던 적이 있다.’ 혹은 지금도 누군가의 명령, 시선, 혹은 감정에 갇혀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렌필드는 그 고리를 끊는다. 자신이 원하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두려움을 감수하고, 스스로를 구원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그의 여정은 고통스럽지만 아름답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오래도록 남는다.

자유의 대가, 그리고 인간적 고뇌의 상징으로서의 렌필드

렌필드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선택과 순응을 통해 드라큘라의 세계 속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힘과 영생이라는 매혹에 이끌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자유, 정체성, 인간적인 삶. 이것들은 단지 일상적인 요소가 아니라,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다. 드라큘라의 명령에 따라 타인의 생명을 빼앗고, 거울 없는 삶을 살아가며, 그는 점점 더 인간성을 상실해간다. 이 영화의 탁월한 점은, 렌필드를 통해 ‘종속의 달콤한 유혹’과 그 이면에 도사린 ‘자아 붕괴’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드라큘라를 배신하지 못한다. 그것은 물리적인 두려움만이 아니다. 오랜 시간 한 관계에 묶여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헤어짐이 두려운 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 익숙함, 나 자신의 일부처럼 여겨졌던 존재와의 단절이라는 감정적 고통 때문이다. 렌필드는 그것을 감당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도움을 요청하는 법도 배운다. 단순히 괴력을 휘두르거나, 적들을 쓸어버리는 액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해방으로 그려진다. 이 부분이 감동적이었다. 그는 드디어 인간이 되어간다. 더 이상 괴물의 하수인이 아닌,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직면하고 선택할 수 있는 인간. 그것이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였다. 현대 사회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얽매인 관계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가족, 직장, 연인, 친구… 그 어떤 관계든, 렌필드처럼 주체성을 잃은 상태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영화는 말한다. "너도 벗어날 수 있다." 스스로를 구원하라고. 도움을 요청하고, 두려움을 똑바로 바라보며 걸어가라고. 렌필드는 그렇게 단순한 캐릭터가 아닌, 하나의 감정적 상징으로 확장된다.

괴물로부터의 탈출, 그리고 진짜 삶을 향한 렌필드의 걸음

렌필드의 마지막 장면은 단순한 액션의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완성된 결론이었다. 그는 드라큘라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더는 명령을 받지 않는다. 그가 택한 길은 불확실하고, 약해 보이지만, 진짜 인간적인 길이다. 혼자 걷는 길. 두렵지만 스스로 선택한 삶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괴물 이야기지만 본질적으로는 해방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본 후, 나는 렌필드가 단순히 ‘드라큘라의 부하’였던 시절을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가진 인물이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연결될 수 있는 존재다. 그의 변화는 단순한 스토리의 전개가 아니라, 감정의 도약이며, 선택의 서사다. 특히 마지막에 그가 주변 사람들과 웃음을 나누며 인간적인 유대를 회복하는 장면은 울컥할 정도로 따뜻했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의 드라큘라로부터 탈출하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의 강요, 혹은 자기 안의 공포, 과거의 상처. 그 모든 괴물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렌필드는 그런 우리를 대신해 싸우고, 실패하고, 또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결국 자신만의 ‘지금’을 선택한다. 그 모습은 뭉클하면서도 희망적이다.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이유는, 단순히 장면의 멋짐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진심 어린 감정 때문이다. 렌필드는 단지 괴물 이야기의 재해석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괴물로 여기며 살아온 한 인간이, 비로소 인간이 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서사에 우리는 울고 웃고, 위로받는다. 삶이 때론 괴기스럽고 기이하더라도, 결국 우리는 인간이 되기 위해, 나 자신이 되기 위해 싸워야 한다. 렌필드는 그 여정을 말없이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한 장르 영화가 아닌, 한 편의 감정적 연대다.